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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사태 당시 국방장관 노재현 행적

by coutry2022 2023.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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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사태 책임자 였던 노재현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마도 1979년 12월 12일에 일어난 1212사태라는 군사 반란에 대해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 사건은 전두환 등이 주도한 군사 반란으로, 정승화 총장을 암살하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국가권력을 장악했습니다.


이 사건의 가장 큰 책임자는 당시의 국방부장관이었던 노재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재현은 1926년에 마산에서 출생하여 1955년에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군내에서 여러 직책을 맡았으며 1977년에는 국방부 장관이 되었습니다.

 

 

 


노재현은 국방장관으로서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는 1212사태가 일어났을 때, 반란군을 막을 수 있는 권한과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들과 함께 공관을 탈출하여 서울 시내를 빙 돌았습니다. 그는 부하였던 이경율소장의 집에 가족들을 맡긴 후 자정이 되어서야 육본 B-2벙커에 나타났고 상황을 보고 받은 후 한미연합군사령부로 가서 국방부로 다시 이동했습니다. 그러나 국방부에 들어온 반란군 제1공수특전여단이 국방부장관 노재현을 발견하고 잡아서 보안사로 끌고 갔습니다.


노재현은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부대를 이동시킬 수 있는 권한이 없었고, 미군의 동의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국방장관으로서의 역할을 잊고, 어리석고 무책임한 행위를 했다고 지적받았습니다. 그는 1212사태 이후에는 공직을 떠나 산업계에서 일했습니다.

 

 

 

 

1212사태이후 노재현의 행적

 

1979년12월, 국방부 장관에서 사퇴, 공직에서 물러남
1980년1월, (주)한국종합화학공업 사장취임
1981년3월, 한국화학연구원의 이사장선임
1982년3월, 한국비료공업협회의 회장취임
1983년10월, 한국화학연구원의 이사장사임
1984년3월, 한국비료공업협회의 회장사임
1984년4월, (주)한국종합화학공업 사장사임
1984년5월, 한국화학공업협회 고문임명
1985년3월, 한국화학공업협회 고문사임
1985년4월, (주)한국종합화학공업 이사재임명
1986년 3월, (주)한국종합화학공업 이사사임
2019년9월25일, 93세의 나이로 사망, 국립대전현충원 안장

 


노재현은 1212사태 이후에도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12·12 군사 반란의 주범들을 재판에 세운 것에 대해 증인으로 나왔으나,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정승화 총장을 공격하는 등 논란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또한, 12·12 군사 반란의 진상을 밝히려는 노력에도 협력하지 않았으며 12·12 군사 반란의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에게 사과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12·12 군사 반란의 역사를 잊으려고 했겠지만 그의 행적은 영화나 드라마 등을 통해 다시 한번 국민들의 분노를 부추겼습니다.


만약 노재현이 반란군의 음모를 미리 파악하고, 반란군을 저지했다면, 대한민국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그런 가능성은 고스란히 존재했을지도 모릅니다. 노재현은 국방장관으로서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는 데 실패했고, 그의 역할은 민주화의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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